1. 영화리뷰
2018년 개봉한 <염력>은 <부산행>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연상호 감독의 차기작으로, 초능력을 얻게 된 한 평범한 남자가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담은 한국형 히어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초능력이라는 이질적인 소재를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현실 문제—재개발, 철거, 자본권력의 횡포—와 결합해 독특한 장르 혼합을 시도합니다.
일반적인 히어로 영화가 개인의 상처와 초능력을 통해 세계를 구원하는 서사라면, <염력>은 이와 정반대로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집중하며, 지극히 현실적인 갈등을 중심에 둡니다. 초능력은 이 영화에서 어떤 거대한 서사를 위한 장치라기보다는, 평범한 한 가장이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으로 등장합니다. 그 점에서 영화는 감동과 풍자, 사회적 메시지를 동시에 지닌 독특한 텍스처를 만들어냅니다.
연상호 감독 특유의 블랙코미디와 사회 풍자는 이 영화에서도 유효합니다. 재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상인들의 모습, 그들을 탄압하는 기업 경호대와 경찰, 그리고 언론의 왜곡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 대상입니다. 초능력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철저히 ‘현실에 발을 붙인 이야기’를 전개하며, 극단적인 판타지보다는 ‘소시민의 분노’와 ‘작은 영웅의 탄생’에 무게를 둡니다.
하지만 영화는 개봉 당시 평단과 관객의 반응이 엇갈렸습니다. 그 이유는 기대와 다르게 초능력 액션이 중심이 아닌, 가족 드라마와 현실 풍자에 더 많은 비중이 실렸기 때문입니다. 일부 관객은 “초능력을 소재로 했으나 시원한 카타르시스가 부족하다”고 느꼈고, 또 다른 일부는 “한국형 히어로물의 색다른 접근”이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문제의식은 분명했지만, 장르적 쾌감과 서사 흐름의 균형은 다소 불균형하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염력>은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초능력 서사를 통해, ‘보통 사람도 초능력자가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고, ‘정의란 무엇인가’, ‘힘이 약한 사람들의 권리를 누가 지켜주는가’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까지 흐르는 감정선은 히어로 서사에 인간미와 현실성을 덧입힌 시도로, 장르의 진화를 실험한 의의가 있습니다.
2. 줄거리 및 스토리
영화는 한 마트의 보안요원으로 일하는 ‘신석헌’(류승룡)이 어느 날 운석처럼 지구에 떨어진 외계 물질에 노출되면서, 뜻밖의 초능력(염력)을 얻게 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석헌은 그동안 가족과도 단절된 채 살아온 인물로, 특히 딸 ‘루미’(심은경)와는 오랜 시간 연락조차 끊긴 채 지내고 있었습니다.
한편 루미는 어머니가 운영하던 치킨집을 이어받아 시장 상인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고 있었지만, 재개발로 인해 거대 자본과 건설업체, 경호회사, 경찰의 폭력적인 탄압을 받게 됩니다. 특히 어머니가 경찰의 강제철거 과정에서 사망하게 되며, 루미는 슬픔과 분노 속에서 홀로 저항합니다. 이 과정에서 석헌은 자신의 딸이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그녀의 앞에 나타나게 됩니다.
하지만 루미는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를 반기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하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깊고, 그의 존재는 오히려 더 불편한 기억을 떠오르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석헌은 딸을 위해서 무언가라도 해보겠다는 다짐을 품고, 자신에게 생긴 염력을 훈련하기 시작합니다.
영화의 중반부터는 석헌이 자신의 능력을 점점 익혀가며, 딸의 시장과 상인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중심이 됩니다. 그는 폭력적인 경호업체 직원들을 물리치고, 철거 현장에 등장해 장비들을 멈추게 하는 등 초능력을 이용해 상인들의 마지막 방어선이 됩니다.
하지만 자본과 권력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미디어는 석헌을 ‘괴한’으로 묘사하고, 경찰은 그를 체포하려 하며, 루미와 상인들은 점점 더 궁지에 몰립니다. 이 과정에서 석헌의 초능력은 단순한 액션이 아닌 ‘저항의 상징’으로 기능하게 되며, 아버지와 딸 사이의 오랜 감정의 벽도 점차 허물어집니다.
클라이맥스는 석헌이 스스로를 희생해 딸과 시장 사람들을 보호하는 장면입니다. 그는 결국 경찰과 보안 인력의 포위망을 뚫고 딸과 상인들이 탈출할 수 있게 돕고, 자신은 모든 죄를 뒤집어쓴 채 구속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그는 감옥 안에서 초능력을 다시 사용하며, 무언의 메시지를 남깁니다. 그리고 루미는 시장의 작은 가게에서 다시 웃으며 살아갑니다.
결국 <염력>은 초능력이라는 장치를 통해 한 아버지의 회복 서사와, 불의에 저항하는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교차시킵니다. 거창한 세계 구원이 아닌, 가족과 공동체를 위한 작고도 거대한 싸움. 이 영화는 그렇게 작은 영웅의 이야기를 말합니다.
3. 배우 및 캐릭터
<염력>의 캐릭터들은 모두 한국 사회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평범하지만, 위기 앞에서 비범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인물들로 그려지며, 배우들은 이 설정에 부합하는 뛰어난 연기를 선보입니다.
류승룡은 주인공 신석헌 역을 맡아 초능력을 얻게 된 평범한 남성을 진정성 있게 연기합니다. 기존 히어로 영화처럼 화려하거나 당당한 영웅상이 아닌, 서툴고 어설픈 중년 남성을 표현하며 관객의 공감을 자아냅니다. 석헌은 가족에게 외면당하고 사회적으로도 존재감이 없는 인물이지만, 위기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맞서는 ‘소시민형 영웅’입니다. 류승룡은 이런 캐릭터를 능청스러움과 진지함 사이에서 균형감 있게 소화해냅니다.
심은경은 딸 루미 역으로 등장해 강단 있고 현실적인 여성 캐릭터를 연기합니다. 그녀는 피해자로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재개발 반대 시위를 주도하며, 상인들과 연대하는 인물입니다. 특히 아버지를 향한 감정선의 변화, 고통과 분노, 그리고 나중에 찾아오는 화해와 눈물까지, 섬세한 감정 표현이 돋보입니다.
박정민, 정유미, 김민재 등 조연들도 각자의 개성을 살려 극에 활력을 더합니다. 특히 김민재는 재개발 건설사 경호대 대장으로 출연하여 냉혹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현실감 있게 보여줍니다. 영화의 적대세력을 단순한 악당이 아닌 현실의 구조적 문제로 설계한 부분이 인상적이며, 배우들은 그에 맞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입니다.
각 인물들은 단순히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영웅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집니다. 결국 이 영화는 초능력자가 등장하지만, 그 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선택과 용기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4. 결론
<염력>은 전통적인 히어로물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 한국형 휴먼 초능력 영화입니다. 그것은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아니라, 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바치는 아버지의 이야기이며, 정의의 검이 아닌 평범한 마음과 선택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무겁지만은 않습니다. 연상호 감독 특유의 유머와 현실 풍자, 그리고 ‘이야기를 통해 감동을 전달하려는 시도’는 <염력>을 단순한 장르 영화에서 한 단계 끌어올립니다. 다만 장르적 완성도와 감정적 메시지 사이의 균형이 다소 어긋나는 부분이 있어, 일부 관객에게는 다소 아쉽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추천 포인트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류승룡과 심은경의 부녀 연기와 진정성 있는 감정선. 둘째, 한국 사회의 현실 문제를 초능력이라는 장치로 비틀며 접근한 서사적 실험. 셋째, 마지막까지 지켜내는 ‘가족’과 ‘공동체’에 대한 따뜻한 시선입니다.
<염력>은 묻습니다. “당신에게 초능력이 생긴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그 답은, 수많은 사람을 구하거나 적을 무찌르는 것이 아니라, 단 한 사람—소중한 가족, 내 곁의 이웃—을 위해서라도 ‘쓰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진심이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힘이며, 지금도 우리가 영웅을 다시 정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