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영화리뷰
『파리 오페라(L'Opéra, 2017)』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공연 예술 기관 중 하나인 파리 국립 오페라 하우스(Opéra national de Paris)의 내부를 기록한 프랑스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감독은 장 스테판 브롱(Jean-Stéphane Bron)이며, 약 2년간 오페라 가르니에와 오페라 바스티유를 오가며 이 복합적인 조직의 일상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섬세하게 기록했습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무대 위의 화려함'이 아닌, 그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수백 명의 사람들의 노력과 감정을 비추는 데 있습니다. 보통 오페라 하면, 아름다운 음악과 화려한 무대만을 떠올리기 쉬우나, 이 다큐멘터리는 음악감독, 지휘자, 성악가, 무용수, 무대감독, 분장사, 경영진, 심지어는 수의사까지 포함한 수많은 구성원들의 땀과 고민을 담아냅니다.
영화는 서사적 구조나 목소리를 통한 해설 없이, 관찰 카메라 형식의 편집을 사용하여 자연스럽게 오페라 하우스의 내면을 보여줍니다. 이 방식은 마치 관객이 직접 그 공간에 들어가 있는 듯한 생생함을 주며, 각각의 인물이 겪는 갈등과 기쁨을 더 진솔하게 느끼게 합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이 영화가 단지 오페라 마니아를 위한 기록이 아닌, 조직과 예술, 인간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페라라는 예술 장르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협업과 갈등, 정치와 철학, 창조와 노동이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며, 예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테러의 공포, 경영 구조의 위기, 인종적 다양성에 대한 고민 등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면서, 단지 공연장 내부의 이야기를 넘어, 예술기관이 시대와 어떻게 함께 호흡하는가에 대한 넓은 시야를 제공해 줍니다.
『파리 오페라』는 눈부신 미장센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닙니다. 그러나 꾸밈없이 솔직한 현실, 예술가들의 인간적인 고뇌와 열정이 오히려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이 작품은 공연의 찰나를 위해 수많은 보이지 않는 손들이 존재함을 알려주는, 예술에 대한 가장 진실한 헌사입니다.
2. 줄거리 및 스토리
『파리 오페라』는 전통적인 의미의 줄거리나 서사가 존재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이 작품은 오페라 하우스의 일 년여의 시간을 따라가는 관찰 다큐멘터리입니다. 시계가 아닌, 감정과 에너지의 흐름에 따라 장면이 교차되고, 각각의 인물들이 짧게 짧게 등장하면서 오페라라는 ‘거대한 유기체’의 삶을 그려냅니다.
영화는 오페라 가르니에와 오페라 바스티유, 두 공연장 사이를 오가며 다양한 인물들을 따라갑니다. 음악감독 필립 조르당(Philippe Jordan)은 말러 교향곡을 리허설하며 젊은 단원들과 소통의 어려움을 겪습니다. 신인 성악가는 오디션에서 무대 경험 부족으로 주눅이 들고, 무용단에서는 발레리노와 발레리나가 서로 다른 해석으로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때로는 마케팅팀이 후원자들을 설득하거나, 극장장의 일정 조율이 삐걱거리며, 무대 위 백조의 호수가 완성되기 전까지 무대팀이 밤낮으로 철골 구조를 올리는 장면은 숨 막힐 만큼 치열합니다. 심지어 오페라 무대에 등장할 황소를 위해 수의사가 진료를 오는 장면까지 등장하며, 공연을 구성하는 요소가 얼마나 복잡한지 실감하게 합니다.
영화의 핵심적 사건 중 하나는, 파리 테러와 유럽 전반의 긴장 속에서 오페라단이 직면하는 위기입니다. 보안 점검이 강화되고, 관객 수 감소와 경영적 압박은 내부에 긴장을 가져옵니다. 또한 젊은 무용수 중 하나가 오페라 내의 다양성과 인종 문제에 대해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는 장면은, 오페라라는 전통예술이 오늘날 어떤 진화를 겪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관객은 이 다채로운 인물들을 통해 오페라를 ‘한 명의 스타’ 중심이 아닌, 수많은 구성원이 함께 만들어내는 예술의 집합체로 인식하게 됩니다. 마지막 장면은 무대 위 화려한 공연이 아닌, 공연이 끝난 뒤 조용히 정리되는 무대 뒤의 모습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는 영화가 일관되게 보여주는 관점—예술의 본질은 무대 위의 순간뿐만 아니라, 그 순간을 만들기 위한 모든 시간과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메시지를 함축합니다.
3. 배우 및 캐릭터
이 영화에는 전문 배우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실제 오페라 하우스에서 일하는 다양한 인물들이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성악가, 지휘자, 무대 감독, 기술자, 행정 책임자, 인턴, 마케터, 수의사까지 매우 폭넓은 범주에 걸쳐 있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예술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인물들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지휘자 필립 조르당입니다. 그는 세계적인 마에스트로로서, 고전과 현대 작품을 넘나드는 폭넓은 역량을 지닌 인물입니다. 리허설에서 그는 단원들에게 끊임없이 음악적 방향을 설명하고, 때로는 피곤에 지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는 예술과 인간의 경계에서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또 다른 인상적인 인물은 젊은 성악가 오디션을 받는 남성과, 오페라 첫 데뷔를 앞두고 불안에 떠는 발레리나입니다. 이들은 아직 불안정한 위치에 있으나, 그 불안과 두려움이 바로 예술의 원동력임을 보여줍니다. 특히 발레리나는 무대에 서기 직전까지 스스로를 다독이며 준비하는 모습이 진한 여운을 남깁니다.
극장장과 경영팀은 실질적으로 ‘예술 경영’이라는 개념을 대표합니다. 이들은 수익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 고군분투하며, 후원자들과의 협상, 정책적 결정, 그리고 구성원 간의 갈등 중재까지 맡고 있습니다. 예술이 결코 이상주의만으로는 운영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축입니다.
인물들이 모두 ‘주연’이자 동시에 ‘조연’인 구조는, 오페라라는 장르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누구 하나의 명성을 위한 것이 아닌,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노력이 쌓여서 한 편의 공연이 완성된다는 메시지를 이 영화는 인물의 다층적 구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4. 결론
『파리 오페라』는 단순한 음악 다큐멘터리를 넘어, 예술의 구조와 현실, 사람들의 땀과 감정을 깊이 있게 담아낸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오페라라는 고급예술을 낯설게 느끼는 관객에게도 충분히 감동적이며, 각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의 목표를 향해 협력하고 때로는 부딪치며 나아가는지 보여주는 집단 창작의 아름다움을 전합니다.
화려한 무대 위를 빛내기 위한 무대 아래의 모든 것—그 무게, 진실, 노력이 정직하게 담긴 이 작품은, 모든 예술 분야 종사자와 창작자에게 큰 공감을 줄 뿐 아니라, 일반 관객에게도 공연예술의 가치와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됩니다.
추천 포인트:
- 무대 뒤의 예술적 과정과 인간 군상의 리얼한 묘사
- 전통예술의 지속성과 변화에 대한 고민
- 경영, 예술, 철학, 사회적 이슈까지 아우르는 넓은 시선
- 관찰 카메라 형식의 생생한 현장감
- 무대 위와 뒤가 공존하는 균형감 있는 서사
『파리 오페라』는 오페라를 좋아하든, 아니든 상관없이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싶은 모든 이에게 깊은 감동을 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이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면, 이 작품을 꼭 감상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